"Go Ahead!"…미연&박재천 이 부부가 사는 법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프리재즈 피아니스트 미연ㆍ타악 연주자 박재천 부부. 이들은 3일부터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악 페스티벌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에 참가해 '조상이 남긴 꿈'을 주제로 공연을 펼친다. 2012.7.1 << 문화부 기사참조 >> jihopark@yna.co.kr |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아, 정말. 고수(鼓手) 때문에 못 해먹겠네!"
피아노로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던 부인이 드럼 세트로 장구 장단을 맞추던 남편에게 슬쩍 눈을 흘기며 웃는다.
"으하하하. 미안. 그럼 다시 가볼까?"
부부는 눈을 감고 서로 소리에 의지해 다시금 열정적으로 연주한다.
지난달 29일 양재동 연습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미연과 타악 연주자 박재천 부부는 우리나라 프리재즈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연주자다.
이 듀오가 함께 프리재즈를 하게 된 데는 우리나라 프리재즈의 거장인 색소포니스트 강태환의 힘이 컸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타악 연주자로 활동했는데, 그때 강 선생님이 '타국에서 주접떨지 말고 그냥 들어와라. 너는 즉흥 음악을 해야 한다. 공연 다 잡아놨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와서 시작하게 됐죠. (웃음) 미연이는 제가 같이하자고 해서 하게 된 거고요."(박재천. 이하 박)
"즉흥 음악은 연주자 자신을 시험하는 음악입니다. 상대방의 연주에 답하거나 동조하는 등 그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해야 하죠. 물론 듣는 사람은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게 주된 것은 아닙니다."(미연. 이하 연)
"그래서 즉흥 음악은 연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해입니다. 수많은 연주 패턴이 있어야 하죠. 또 상대 연주자의 성향도 연구해야 합니다. 돌발 사태에 대비해야 해서 그 어느 음악 연주보다 준비가 많은 장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소재가 많아야 상대방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박)
박재천은 패턴, 즉 음악의 이야기 소재를 찾으려고 군 제대 이후 호남으로 내려갔다. 굿판 등을 전전하며 우리 소리의 고수(高手)들을 만나 판소리와 장구 등을 익혔다. 그는 체증한 자료를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생활비를 대던 아내에게 그때그때 보고했다. 그리고 그 자료는 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한 아내가 곡을 쓰는 토대가 됐다. 두 사람은 중앙대 작곡과 출신이다.
"녹음 자료를 듣고 처음에는 정말 음악 안 하고 싶었습니다. 곳곳에 고수가 이렇게 많은데 난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싶었거든요."(연)
"그때 들은 건 같은 것을 수천 번 반복하고 무대에서 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였습니다. 저도 음악을 배웠다고 하지만 그곳에서는 제가 낄 수 있는 자리가 전혀 없더군요. 심지어 무대 위에서 울기도 했어요."(박)
그렇게 배운 우리 소리는 그들의 필살기가 됐다. 이들은 국악에 재즈를 접목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연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연주자의 느낌과 감정에 충실한 즉흥 음악으로 관객보다는 연주자가 중심이 된다.
한 번은 "원 없이 해보자!"며 재즈 클럽에서 자유롭게 굿거리장단만 연주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50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하는 이들의 연주에 그나마 몇 안 되는 관객이 모두 공연장을 떠났다고 했다.
즉흥 음악이긴 하지만 관객에게 너무 불친절한 것 아니냐는 말에 박재천은 예술가라면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술가라면 자유롭게 '꼴통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기호에 얽매여 해달라는 걸 해주기 시작하면 그건 자유로운 게 아니잖아요. 한 번은 제가 공연장에 관객이 없어 아쉽다고 하니깐 일본의 재즈 평론가 소에지마 테루토가 계속 앞으로 나가라는 의미로 '헤이, 박 상! 고 어헤드(Go Ahead)!'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계속 즉흥 음악을 하는 이유죠."(박)
이들 부부의 '고 어헤드' 정신은 그들의 연습실 벽에 붙은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는 문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잘 되고 잘못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제 나이가 쉰이 넘어서 그런가.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그래도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볼 겁니다."(박)
그는 즉흥 음악 연주자 60명이 한 무대에 서는 집단연희즉흥 형태의 재즈 오케스트라 공연 SMFM(Seoul Meeting Free Music), 아내와 강태환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화(제목 '예전에 그랬듯이')로 만드는 프로젝트 등을 줄줄이 기획 중이다.
우선은 국립극장 주최로 3∼21일 열리는 국악 페스티벌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에 참가한다. '조상이 남긴 꿈'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에는 명창 안숙선, 고수 김청만, 꽹과리 연주자 이광수도 참여한다.
"예술가는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여야지 앞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정체된 것입니다. 테루토가 말했듯이 저희는 '고 어헤드' 할 겁니다. (웃음)"(박)
▲미연 & 박재천 듀오의 '조상이 남긴 꿈' = 3∼4일 오후 8시 국립극장 청소년하늘극장. 관람료는 3만 원이며 문의는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