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젤’ 공연하는 발레리노 이원국
20년간 부동의 주역
“이젠 유럽식 ‘살롱 발레’ 키울 것”
‘한국 발레리노의 이정표’‘클래식 발레의 교과서’ 등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한국 발레의 남성 무용수 시대를 연 ‘현역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45·사진)씨가 낭만 발레의 정수 ‘지젤’을 공연한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거쳐 주역만 20년을 하며 주역을 맡지 않은 발레 레퍼토리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지젤’은 그에게 뜻깊은 작품이다. 현재까지 최고의 기량으로 관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이씨는 올해 ‘지젤’ 공연만큼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무대에 오른다.
1841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낭만 발레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지젤’은 지젤에 대한 알브레이트의 순수한 사랑을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전하는 극이다. 이씨는 “1993년 문훈숙씨(현 유니버설발레단장)와 ‘지젤’을 공연한 이래 20년 동안 배주윤, 김지영, 김주원, 임혜경, 윤혜진 등 최고 기량의 프리마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철없어 보일 만큼 순수하고 인간적인 알브레이트 캐릭터에 깊이 공감한다. 정년을 앞둔 무용수의 노련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학교는 안 가고,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곳에만 갔으니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이었지요.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방황했지만 어머니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수영, 붓글씨, 보디빌딩 등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셨죠. 발레를 소개해 주신 것도 어머니예요. 처음에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지만, 금방 발레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그는 오랜 시간 꾸준히 발레라는 한 길만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어린 시절 방황했던 경험과 어머니 김금자(73)씨의 영향을 꼽았다. 열아홉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한 길만 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그만큼 더 춤에 매진했다. 결국 발레 때문에 고등학교에 복학한 그는 중앙대 무용학과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발레리노의 길에 들어선다.
“우리나라는 경제·상업·행정 등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문화 선진국들을 보면 지방을 기반으로 한 좋은 상주 예술단체들이 많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로부터의 지원만 바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발레단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창고를 개조한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매주 1회 발레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학로 소극장에서의 발레 공연을 한 것은 이원국발레단이 최초다. 그는 “무용수의 손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고, 처음 공연을 시작한 4년 전에는 관객보다 출연진이 많은 경우도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더 많은 분들이 발레를 친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