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회화80)모교 교수의 월요논단] 제주미술과 시대정신

 

지난 18일 서귀포예술의전당이 주최한 '제주정신'이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막을 내렸다. 제주작가 22인의 작품들을 통해 '제주의 시대정신'을 살펴본다는 것이 전시의 취지다. 나는 특정 전시회에서 시대정신을 찾겠다는 기획자의 야심 찬 의도에 공감한다. 이 전시는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소명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일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로 통용되기도 하는 시대정신은 시간(Zeit)과 정신(Gaist)의 합성어로 한 시대를 특징짓는 지적, 정신적, 문화적 동향을 지시하는 말이다. 독일 관념론자 헤겔에 따르면 시대정신이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 정신'이자 '한 시대가 끝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정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예술의 오랜 화두였다. '예술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처럼 예술의 역사는 시대정신을 발견하는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부르주아 문화와 근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1980년대에 이르면 자이트가이스트는 신표현주의를 비롯한 신구상 회화의 정신을 해석하는 잣대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의 제목이 '자이트가이스트 코리아'였다.

그렇다면 제주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그 예술적 표현의 성과는 어떤 것인가? 헤겔이 주장처럼 시대정신은 '한 시대가 끝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정신'이므로 평가를 유보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철학과는 달리 예술가들의 작품에 표상된 시대정신은 유기적이고 현재 진행형인 실험이라는 속성을 지닌다. 이들의 작품은 먼 훗날 동시대의 제주의 지적, 정신적, 문화적 동향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역으로 제주의 시대정신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창조되는 어떤 정신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시대의 파수꾼으로서 예술가의 역할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아우르고 있다.

제주의 시대정신이 제주의 지적, 정신적, 문화적 동향이라면 그것은 제주의 자연과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람, 물, 돌, 오름, 동굴, 곶자왈, 신화, 무속, 항쟁, 유배, 해녀, 방언 따위의 소재들이다. 생태, 평화, 환경, 섬, 태평양 등의 소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주미술인들은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구현하거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거나, 대자연과의 조화를 지향하거나, 지역공동체를 결속하거나, 세계화를 지향하는 등의 과제를 수행해 왔다. 이번 '제주정신' 전에 출품된 22명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러한 제주의 자연과 역사에서 연유된 소재를 은유와 상징 그리고 알레고리의 형식을 통해 담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구현하는 일은 제주 미술가들에게 부여된 소명일 것이다. 시대정신의 모색과 구현 과정에서 공동체의 결속과 딛고 있는 땅의 주인의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제주의 환경에 따라 위기의 상황에 놓인 제주의 정체성,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은 제주미술인들에게 부여된 당면 과제다. <김영호 미술평론가·중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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