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한·일 협력의 길, 미래에서 찾아야
국민일보
2017년은 한·일 교류사에서 기념비적인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양국 상호방문객이 처음으로 700만명을 넘었고 올해는 1000만명을 넘본다. 올 1∼9월 이미 700만명 수준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한·일 관광교류 1000만명 시대’란 대기록을 기대해봄 직하다.
그런데 현재 양국의 관광교류는 대단히 불균형적이다. 지난해 방일 한국인은 509만명인 데 비해 방한 일본인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0만명이었다. 양국의 인적교류 언밸런스가 마치 만성적인 대일 무역역조구조를 보는 것 같아 좀 마뜩잖다.
원인은 여럿이다. 한류 붐이 한풀 가라앉기도 했고, 한국의 취약한 관광인프라 탓도 있겠다. 여기에 지난 5년간 양국 간 갈등구조가 최고조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인적교류에 현저한 역조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게 바로 2012년부터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양국의 교역규모 역시 2012년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갈등심화 원인설을 뒷받침한다.
교역규모 위축은 이해하기 어렵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교역규모는 98년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일시적 위축이 있었지만 경향적으로 확대돼 왔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2012년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해 6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최종 서명 직전에 국내의 반발로 폐기돼 외교적 해프닝이 빚어졌고, 8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일본 사회가 크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2012년 양국은 한·일 관계를 관리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의 후유증은 아직 진행형이다. 다만 최근 들어 양국의 협력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일 양국을 둘러싼 외부적 압박이 자주 거론되고 그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압박이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국민 우선주의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다.
우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멀쩡하게 작동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또 미국은 자신들이 앞장서 주도해왔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해 이미 국회 비준까지 마친 일본의 기대를 짓밟고 말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 또한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패권주의적 존재감을 되레 강화하고 있다. 지난 15개월 동안 이어졌던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가 그 증거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보복조치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원칙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이는 2012∼14년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 끝에 나온 중국의 ‘일본 때리기’나 다를 바 없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는 10월 31일 양국 정부 합의에 따라 수습된 듯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사태가 얼마든지 예상되는 만큼 중국의 존재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공동의 걱정거리가 됐다. 여기에 북한의 안보위협 앞에 한·일의 협력 필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에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을 오가며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해온 민간기구 한일·일한협력위원회는 3일 도쿄에서 제53회 합동총회를 열고 ‘한·일 미래의 과제와 협력’을 주제로 삼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일 경제협력관계 재구축 모색’이란 주제로 발표했는데, 위축된 양국 관계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주로 거론했다.
지난 50여년간 한·일 간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경제협력이 주요 봉합재료였다. 하지만 그 효과는 늘 일시적이었고 갈등은 어느 틈에 다시 불거지곤 했다. 경제협력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성과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다. 그러자면 양국이 공통과제를 함께 풀어가는 뭔가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
한·일의 공통과제는 앞서 말한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패권주의, 북한의 군사도발 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격심한 인구변동 국가로서 양국이 감당해야 할 일 등이다. 그 어떤 나라도 가보지 않은 고령사회의 길을 지금은 일본이 조금 앞서 경험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양국은 같은 단계에 이를 터다.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양국이 ‘고령사회복지국가모델’을 함께 궁리하고 혜안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이는 양국만의 성과가 아니라 인류사에 크나큰 기여로 평가될 것이다.
도쿄=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