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만난 사람]“된장얼굴 불구 복이 많아 무대서 장수”
ㆍ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 아버지역 김진태(연영 16)동문
요즘 김진태(57)는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시집간 수많은 딸들의 두 눈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그의 무대 위 모습을 보며 저마다의 아버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마치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듯 위태롭고 고단한 삶이지만 일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들. 그저 딸들의 행복을 바라는 늙은 아버지 테비에의 모습은 그대로 수많은 아버지들과 겹쳐진다. 김진태는 10년 만에 재공연되고 있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노주현과 함께 가난한 유태인 가정의 아버지 테비에를 연기한다.
199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도 테비에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의 연기를 지켜본 지금의 뮤지컬 배우 김성기는 “김진태 선배 덕분에 멀쩡히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뮤지컬 배우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김진태는 ‘뮤지컬 배우 1세대’로 불린다. 본격적인 상업 뮤지컬이 공연되던 80년대에 <에비타> <레미제라블> 등 인기작들의 주인공을 도맡아했다. 타고난 굵은 음성은 뮤지컬 배우로 특히 빛을 더했다.
“음악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큰형님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형님이 ‘절대음감’을 지녔다고 코흘리개인 저를 칭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님은 김일성대학에서 열었던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했을 만큼 연주실력이 뛰어났죠.”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그는 1·4후퇴 때 내려왔다. 부산 피란 시절 미군부대에서 나온 풍금으로 음악을 들려주던 형님 덕분에 뮤지컬 배우의 소양을 쌓은 셈이다. TV사극에서 자주 장수 역을 맡게 되는 그의 큰 체구는 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아버지는 흥남비료공장의 축구·씨름선수였다고 한다.
“이 나이에 주인공할 수 있는 작품이 흔치 않은데 제 복이죠. 나이든 남자배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작품이니까요. 음악도 서정적이고 내용도 근원적인 우리의 삶을 다루고 있어 따뜻합니다. 10년 전보다 작품 속 아버지에 더 밀착된 느낌이에요. 물론 그만큼 나이가 들어 그렇겠죠. 어느새 제 딸도 시집보낼 때가 됐고요.”
그의 딸 김윤지(29)도 <찬스> 등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다. 이번 작품에 딸과 나란히 오르기를 바랐지만 딸이 오디션에서 아쉽게 떨어지는 바람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도 테비에처럼 딸의 인생을 지켜보며 응원할 뿐이다.
“배우가 된다고 할 때 두 달간 말렸습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저도 그랬으니까, 허허.”
그 역시 경제학 전공을 바라던 부모의 뜻을 어기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극단 가교, 현대극장 등을 거치며 무대 배우로 이력을 쌓았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딴눈을 판 적도 있다.
“어머니가 평화시장에서 포목점을 하셨는데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가세가 아주 힘들어졌어요.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형님도 없을 때였는데 저 좋아하는 연극만 할 수 없겠더라고요. 남대문시장에서 볼펜, 라이터도 팔고 명동 옷가게에서 점원 노릇도 했죠.”
그때 다시 연극을 하자고 꼬드긴 선배가 박인환이다. 연극 <안티고네>를 준비하고 있는데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역할을 국내에서는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며 바람을 넣었다고 한다.
“그때는 열정이 넘쳤어요. 시대정신을 앞서고 있다는 일종의 엘리트의식도 있었고요. 출연료 한 푼 못 받아도 소주 한 잔으로 위안을 삼았죠. 여름이면 해변을 찾아 천막에서 공연했어요. 대천 해수욕장에서 밀물 때 천막이 찢어질까봐 밤새도록 보초서며 천막을 쥐고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올해 뮤지컬 <러브>에서도 황혼의 사랑을 잔잔히 그려 박수를 받았던 그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공연을 마치고는 아내와 함께 겨울 여행을 떠날 작정이다. 긴 세월 동안 무대에 설 수 있는 비결을 묻자 “나 같은 된장 얼굴에 복이 많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12월2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글 김희연·사진 남호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