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잖아.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듯이, 떠오르는 미래를 상상하듯이,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듯이 설렘을 담아 보렴.”
이씨의 조언에 잔뜩 긴장했던 지원양의 피아노 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지원양은 4개월 전 이 학교에 들어왔다. 지원양은 계속 음악을 공부해서 기독교 음악(CCM)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꿈이다.
스승 이씨는 중앙대 음대와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각각 마친 전문 연주자다. 신시내티 음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올해 졸업 논문이 통과되면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지난해 11월에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개인 독주회를 열었으며, 지난 3월부터 이 학교 음악전공과에서 시각 장애 학생 12명을 가르치고 있다.
이씨는 태어날 때 난산(難産)으로 수술 중 시신경에 생긴 이상 때문에 앞을 보지 못했다. 대신 어릴 적부터 소리에 관심이 많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멜로디를 듣고 따라 치며 피아노를 익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우선 점자 악보를 구하기부터 쉽지 않았고, 곡을 완전히 익혀도 몇 달이 지나면 곧잘 잊어버렸다.
이씨는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과 악보를 직접 보면서 연주를 다듬거나 쉽게 복습할 수 있지만, 나는 한 번 레슨을 받으려고 해도 미리 배울 대목을 완전히 외워 가야 했다”고 말했다. 악보 1페이지를 익히는 데 5~6시간이 걸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스스로 준비가 모자란다는 생각에 수업에 나가지 못한 적도 3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남들이 3~4시간 연습할 때, 5~6시간씩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피아노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한빛맹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씨는 “시각 장애 학생들은 귀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청각이 좋고 음악적 재능이 빼어난 경우가 많다. 장애나 가정 형편 때문에 재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내가 ‘다리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학교 출신 연주자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의 정기 연주회(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비(非)시각 장애 교사인 신현동씨와 함께 루토슬라브스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한다. 이씨는 시각 장애를 지니고 있는 마림바 연주자 전경호씨 연주 때 피아노 반주도 맡는다. 그는 “먼저 길을 걸어 봤기 때문에 나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며, 그래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의 (02)989-9135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이재혁씨. /김성현 기자
[글·사진=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 http://danp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