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만리장성을 감동시킨 한류콘텐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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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은 한국에서 지척이어서 쉽게 당도할 항공노선을 마다하고 머나먼 뱃길을 선택했다. 인천항에서 칭다오항까지 무려 17시간 배를 탔다. 이 뱃길은 심청이가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바칠 제물로 간 길이다. 칠흑 같은 밤, 뱃전에 몸을 맡기고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듣노라니 하염없이 흘렸을 심청이의 눈물과 칠흑 같았을 심청의 심정이 내 몸속으로 뜨겁게 다가왔다. 우리가 애써 배를 선택한 이유는 ‘문화를 전파하는 일이 산 넘고 물 건너 이루어지는 일’인 데다 장보고로 대변되는 해상을 통한 한중 간 뱃길문화를 체험하자는 취지였다.
지난시 산둥대학에 여장을 풀고 공연준비에 들어갔다. 본 공연은 한중 합동으로 준비했다. ‘아리랑’을 한중 관현악단이 함께 연주하고 아리랑격인 중국의 ‘모리화’를 우리의 국악관현악으로 함께 연주했다. 이어 두 나라가 희망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양국의 관현악과 무용이 함께하는 ‘풍고와 평화의 아리랑’에 실어 대미를 장식했다. 무용은 제천무와 부채춤으로 우리나라 전통의 장중한 미를 선보이고, 풍고춤으로 평화를 향한 힘찬 전진의 북소리를 울렸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첫날 지난 공연에는 무려 2만4000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두 번째 웨이하이 공연에는 1만여명이 몰렸다. 객석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룬 특설무대에서 한중 합동예술단은 2시간30분 동안 공연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 대륙을 감동시킨 문화교류의 현장이었다. 행사장 입장객과 입장하지 못해 울타리에 매달린 인파는 무대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한 사람도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지금까지 가요나 드라마, 영화가 한류의 주류를 이루는 현상임을 감안할 때 이번 공연에 대한 중국 국민의 열광적인 호응은 의외였다. 이는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이 깃든 전통예술이야말로 새로운 한류콘텐츠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이 갖는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단순히 몸동작이나 소리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문화적 뿌리인 우리 문화원형이 그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문화는 접변하면서 성장한다. 서로의 문화적 원형질이 다르더라도 상호 교류 속에서 우리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오랜 시간 훈련되고 담금질된 우리의 문화적 행위가 세계 어디를 가도 인정받는 것은 우리 문화의 원형과 어법을 간직한 독창성에 있으며,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해 가고자 하는 창작적 열의가 더해져 현대인들의 감수성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이번 한중 교류에서 얻은 교훈은 양국 간의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데서 한류의 미래가 있음을 발견한 점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문화적 공감이 큰 반향을 일으킨 교류의 현장이었다. 따라서 한류의 미래는 상호간에 문화적 공감을 찾는 데서 그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일행은 출항했던 뱃길 따라 돌아오는 길도 심청이가 간 인당수 길로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선상에서도 갈 때처럼 한중 간 삶의 보따리를 나르는 상인들을 위해, 뱃전에 몸을 싣고 칠흑의 해상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위해 우리는 예술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선상에서 펼치는 한판 연희를 놓칠세라 빼곡히 둘러앉은 그들에게 울고 웃기는 삶의 실타래를 우리는 밤새 풀어헤치고 있었다. 국적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삶을 공감하고, 문화 속에 만나는 관심의 깊이가 장차 한류의 진정한 가치와 미래를 열어주는 토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채향순 중앙대 교수·무용학
2007.07.12 (목)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