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500명에 ‘행복’을 배달합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 지낸 박시호씨, 4년째 e메일 ‘행복편지’
출세 꿈 접고 행복전도사 변신
“일상의 작은 행복에 귀기울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보내요”
글=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사진=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입력 : 2007.06.18 00:34 / 수정 : 2007.06.18 09:00
- 이 사람도 한때는 출세를 꿈꿨다. 인맥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다가 적기에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국회의원 출마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대신 매일 아침 지인(知人) 500명에게 따뜻한 사연이 듬뿍 담긴 이메일 ‘행복편지’를 보내고 답을 받는 게 그의 낙이다. 이 일을 ‘평생 계속할 몇 가지 일들’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행복편지’ 발행인 박시호(朴市浩·54·사진)씨는 “욕심을 버리니까 행복이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출발해 재경부와 예금보험공사에 근무하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지냈다. 현직은 외국계 자산운용회사 감사다. 예금보험공사에 근무하던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남을 날카롭게 추궁하는 게 업무의 핵심이었다.
“내게 조사를 받던 한 기업인이 자살한 적이 있어요. 그때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내가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적은 없나. 그러나 그게 내 일이었고, 나는 전력을 기울여 사심 없이 일했어요. ”
그가 신문에 실린 따뜻한 사연, 인터넷에 떠도는 재담에 ‘행복편지’라는 제목을 달아 친구 30명에게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1월의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내게도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때 박씨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나 얼굴과 인품을 아는 사람,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귀를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사람에게만 이메일을 보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행복편지’ 회원은 4년째 딱 500명이다.
이 회원들은 일방적으로 글을 받기만 하는 ‘수신자’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사연을 띄워 남과 나누고, 답장과 댓글을 보내 서로를 격려한다. 말하자면 ‘쌍방향 소통자’들이다. 박씨는 쌍방향 소통을 게을리한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솎아낸다. “그동안 200명을 잘랐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 마음’의 이모저모를 새로 배우고 깊이 깨우치는 것이 그동안 박씨를 매료한 힘이었다. ‘행복편지’ 회원들은 20~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전직 장관, 고위 관료, 검사, 판사, 기업 CEO가 많지만 젊은 회사원, 박씨의 단골 식당 직원도 들어 있다.
이들은 이메일 편지에서는 각자 직함도 계급장도 다 떼고 비밀스러운 진짜 맨 얼굴을 보여준다. 박씨는 “이 사람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여리고 착하고 소박한지 아느냐?”고 말했다. 요컨대 “날 선 얼굴로 강력범을 취조하는 검사도, ‘ 세 살 때 엄마 잃은 일곱 살 꼬마가 ‘하늘나라 엄마’라고 주소를 쓴 편지 300통을 한꺼번에 우체통에 집어 넣어 동네 우체국 업무를 마비시켰다’는 사연을 읽으면 불현듯 눈시울을 적시더라”는 깨달음을 박씨는 얻었다.
박씨는 최근 지난 4년간 자신이 회원들과 주고 받은 글을 추려 모은 책 ‘행복편지’를 펴냈다. 박씨가 직접 찍은, 아마추어 수준을 껑충 뛰어넘는 화사한 꽃 사진 수십 장도 사연마다 하나씩 들어 있다. 박씨는 “이래 봬도 사진가 김중만에게 배운 솜씨”라며 어깨를 좍 폈다. 김중만과 박씨는 40년 지기다. 이 책은 회원들의 주문을 받아 찍었는데 닷새 만에 2만부 신청이 완료됐다.
- 이 사람도 한때는 출세를 꿈꿨다. 인맥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다가 적기에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국회의원 출마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대신 매일 아침 지인(知人) 500명에게 따뜻한 사연이 듬뿍 담긴 이메일 ‘행복편지’를 보내고 답을 받는 게 그의 낙이다. 이 일을 ‘평생 계속할 몇 가지 일들’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행복편지’ 발행인 박시호(朴市浩·54·사진)씨는 “욕심을 버리니까 행복이 왔다”고 말했다./정경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