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동남권신공항 요물단지 뚜껑 열린다
“결론에 꿰맞춰진 대형국책사업, 4대강사업에 이어 또… 지역갈등마저 더 심화될 듯”
입력 2016-06-19 19:04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한국에선 지역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인 듯하다. 초읽기에 들어간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영남권이 술렁인다. 밀양이 선정돼야 한다는 대구·경북·경남·울산과 가덕도를 미는 부산이 각각 지역정서를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는 지경이다.
염치고 상식도 내팽개쳐졌다. 지난해 1월 대구·경북·경남·울산·부산 5개 시·도지사들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해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약속은 진작 휴지조각이다. 선정 평가 기준을 5개 시·도가 함께 논의키로 했던 것도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부산에서는 신공항 유치기원 집회, 시민대회 등이 열렸다. 심지어 서병수 부산시장은 “시장직을 걸겠다”고까지 한다. 밀양 지지 측도 지역에 선전물을 뿌리며 맞선다. 항간에는 대구·경북(TK)이 박근혜정권의 지지기반이라며 ‘이미 후보지가 결정됐다’는 말도 나돈다.
한편 영남권 항공 수요의 80%를 소화하는 김해의 시의회는 지난달 만장일치로 ‘밀양 신공항 유치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 주변 산봉우리를 절삭해야 하는 데 따른 자연 훼손과 공해 발생을 원인으로 꼽았다. 충분히 의미 있는 지적이다. 이는 김해공항 확장대응론과도 겹친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보수정권의 지지기반을 자임했던 영남이 세분화된 지역이기주의로 휘청거린다. 이 혼돈은 그간 정권이 지역정서를 자극해온 데서 비롯됐다. 필요성이 불충분하고 가치가 소멸된 의제임에도 마치 죽은 자식 살려내듯 선거 때마다 내세웠다.
본격적인 계기는 2002년 4월,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 민항기가 공항 북쪽 돗대산에 부딪혀 추락한 사건이다. 이후 영남권 지자체들은 줄곧 신공항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마침내 2006년 타당성 조사, 2007년엔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등극했다.
밀양과 가덕도가 후보지로 뜬 것도 대략 그 즈음인데 2009년 12월 국토연구원의 2차 용역조사 결과는 비용·편익 분석에서 두 곳 다 1.0 이하로 경제성이 크게 낮았다. 4대강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던 MB 정권은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을 터다. 하지만 동남권 신공항의 당위성은 2025년을 전후해 김해공항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전망과 함께 전혀 식어들지 않았다. 결국 MB 정권은 다시 2010년 7월 전문가 20명으로 입지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토록 했다. 이듬해 3월 나온 평가 결과는 두 곳 모두 합격점 미달이었다. 그로써 사업은 백지화됐다.
그러나 동남권 신공항은 요물단지처럼 꿈틀댔다. 2012년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폐기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에 담았다. 집권한 박 정권은 경제민주화 공약 등은 모른 체했음에도 동남권 신공항만은 내칠 수 없었던 것일까. 2013년 7월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ADP)과 교통연구원에 각각 영남권 국제선 및 국내선 수요예측 조사를 맡긴다.
2014년 7월 나온 340여쪽의 조사 결과는 지극히 점증적인 수요 증가를 거론할 뿐 지역 타당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후 1년 남짓 후보지 선정이 주춤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해 8월 ADP의 자회사 ADPi에 입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겼고, 오는 24일로 용역 결과 제출 시한을 맞는다. 사실상 ADPi는 꽃놀이패다. 영남권이 들썩거리는 배경이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전문가 집단의 판단을 무시한 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전개됐다. 4대강 사업에 이어 또 한 번 결론에 꿰맞춰진 대형 국책사업이 진행될 지경이다. 게다가 후보지 선정 관련 지역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기세다. 판도라 상자에서는 그나마 끝자락에 ‘희망’이라도 튀어나왔는데 동남권 신공항이란 요물단지는 걱정거리만 넘친다. 이를 어이할꼬.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염치고 상식도 내팽개쳐졌다. 지난해 1월 대구·경북·경남·울산·부산 5개 시·도지사들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해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약속은 진작 휴지조각이다. 선정 평가 기준을 5개 시·도가 함께 논의키로 했던 것도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부산에서는 신공항 유치기원 집회, 시민대회 등이 열렸다. 심지어 서병수 부산시장은 “시장직을 걸겠다”고까지 한다. 밀양 지지 측도 지역에 선전물을 뿌리며 맞선다. 항간에는 대구·경북(TK)이 박근혜정권의 지지기반이라며 ‘이미 후보지가 결정됐다’는 말도 나돈다.
한편 영남권 항공 수요의 80%를 소화하는 김해의 시의회는 지난달 만장일치로 ‘밀양 신공항 유치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 주변 산봉우리를 절삭해야 하는 데 따른 자연 훼손과 공해 발생을 원인으로 꼽았다. 충분히 의미 있는 지적이다. 이는 김해공항 확장대응론과도 겹친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보수정권의 지지기반을 자임했던 영남이 세분화된 지역이기주의로 휘청거린다. 이 혼돈은 그간 정권이 지역정서를 자극해온 데서 비롯됐다. 필요성이 불충분하고 가치가 소멸된 의제임에도 마치 죽은 자식 살려내듯 선거 때마다 내세웠다.
본격적인 계기는 2002년 4월,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 민항기가 공항 북쪽 돗대산에 부딪혀 추락한 사건이다. 이후 영남권 지자체들은 줄곧 신공항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마침내 2006년 타당성 조사, 2007년엔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등극했다.
밀양과 가덕도가 후보지로 뜬 것도 대략 그 즈음인데 2009년 12월 국토연구원의 2차 용역조사 결과는 비용·편익 분석에서 두 곳 다 1.0 이하로 경제성이 크게 낮았다. 4대강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던 MB 정권은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을 터다. 하지만 동남권 신공항의 당위성은 2025년을 전후해 김해공항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전망과 함께 전혀 식어들지 않았다. 결국 MB 정권은 다시 2010년 7월 전문가 20명으로 입지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토록 했다. 이듬해 3월 나온 평가 결과는 두 곳 모두 합격점 미달이었다. 그로써 사업은 백지화됐다.
그러나 동남권 신공항은 요물단지처럼 꿈틀댔다. 2012년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폐기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에 담았다. 집권한 박 정권은 경제민주화 공약 등은 모른 체했음에도 동남권 신공항만은 내칠 수 없었던 것일까. 2013년 7월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ADP)과 교통연구원에 각각 영남권 국제선 및 국내선 수요예측 조사를 맡긴다.
2014년 7월 나온 340여쪽의 조사 결과는 지극히 점증적인 수요 증가를 거론할 뿐 지역 타당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후 1년 남짓 후보지 선정이 주춤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해 8월 ADP의 자회사 ADPi에 입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겼고, 오는 24일로 용역 결과 제출 시한을 맞는다. 사실상 ADPi는 꽃놀이패다. 영남권이 들썩거리는 배경이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전문가 집단의 판단을 무시한 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전개됐다. 4대강 사업에 이어 또 한 번 결론에 꿰맞춰진 대형 국책사업이 진행될 지경이다. 게다가 후보지 선정 관련 지역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기세다. 판도라 상자에서는 그나마 끝자락에 ‘희망’이라도 튀어나왔는데 동남권 신공항이란 요물단지는 걱정거리만 넘친다. 이를 어이할꼬.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