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6년 3월 중대신문 인터뷰 '진로드'에서 전재하였습니다.]

 

흰 가운을 벗고 국민의 옆에 서다

 

국회사무처 보건복지위원회 입법조사관 노의현 동문(약학과 0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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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몸이 하나뿐이라 두 갈래 길 모두를 걷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시의 말미에는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라고 쓰여있다. 노의현 동문은 국민에 봉사하는 삶을 위해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약사의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 입법조사관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남긴 시의 여운이 감도는 그의 삶을 함께 돌아보았다.

 
약국에서 고시촌까지
고등학교 시절 교사의 꿈을 꾸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중앙대 약학과에 진학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생각해본 적 없던 그는 4년의 대학생활 동안 학업에 의욕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약대 실험반 친구들과 많이 놀러 다녔어요. 무사히 약사 면허를 따서 약국에서 일할 생각뿐이었죠.”

조용히 대학생활을 마치고 약사 면허를 취득한 그는 군 복무 후 바로 약국에 취직했다. 하지만 약국의 정적인 분위기와 또래 직원이 없는 환경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20대 청년에게 견디기 힘든 곳이었고 결국 그는 3개월 만에 스스로 약국 문을 박차고 나왔다. “저 자신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약사 일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조용하고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니 지루했어요. 일이 즐겁지 않았던 거죠.”

그가 약국을 떠난 이유는 단순히 지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약사로 근무하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의약계의 허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보호대상자는 약국에서 500원만 내면 일반인과 똑같은 약을 받아갈 수 있어요. 좋은 제도이지만 고급 차를 타고 와서 남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내고 약을 받아가는 사람도 종종 있었죠. 분명히 문제가 있었고 이런 제도의 허점을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봐 온 덕분일까. 그의 마음속에는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과 기회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점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도 공무원이 되겠다는 아들의 뜬금없는 고백을 흔쾌히 받아 주었다. 결국 그는 약사 생활 3개월 만에 아무런 보장이 없는 공무원의 길을 향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섰다.
 
나를 이기는 시간
많은 이들이 하루하루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고시촌. 평범한 약사이던 그는 치열한 고시생 무리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단 2년 만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국가고시 중 가장 경쟁률이 높다는 입법고시에 재경직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그는 고시공부를 시작하기 전 필요한 것으로 ‘시간 정하기’를 꼽았다. “시간 정하기란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일정 기간 내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주일에 몇 시간을 공부하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이죠.”

그는 일주일에 70시간씩 공부하여 3년 안에 합격하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새겼다. 약대 출신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던 경제학을 독학하며 평일에는 하루 12시간, 토요일은 10시간씩 공부하고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게임은 단 몇 분 만에 결과가 나오지만 공부는 아무리 해도 내 실력을 명확히 가늠하기 힘들죠. 저는 공부도 게임처럼 느껴지도록 했어요. 일주일에 70시간을 공부하면 저 자신을 이긴 거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 거죠.”
자신을 이기기 위해 홀로 끊임없이 투쟁하던 그에게도 여느 고시생처럼 슬럼프가 찾아왔다. 행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2차 시험에서 합격권과 현격한 차이로 불합격했기 때문이다. “1년 정도 공부를 하고 본 시험이었는데 생각보다 합격권에서 너무 먼 점수를 받았어요. 의욕이 뚝 떨어져 그해 가을에는 제대로 펜을 잡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죠. 슬럼프는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해요.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끈기죠. 고시공부는 장기적인 싸움이니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얼마나 빨리 극복해내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죠.”

슬럼프에서 탈출한 그는 이듬해 제30회 입법고시 재경직에 당당히 수석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 바탕에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분투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당신의 삶을 위하여
합격 후 그는 국회사무처 보건복지위원회의 입법조사관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상임위원회 입법조사관은 법안과 예산에 관한 검토 보고 업무를 담당한다. 법안을 검토하여 예상되는 긍정적 영향이나 부정적 측면을 정리해 의원들에게 알리고, 정부 예산에서 지출을 축소해야 할 부분과 확대해야 할 부분을 조사해 예산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역할이다.

그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입법조사관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훌륭한 내용을 담아 보고서를 제출하면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세금의 낭비를 막고 법안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어서다. 처음 공직자의 길을 선택할 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국민을 위한’ 삶에 정확히 부합하는 직업이었다.

노력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입법조사관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 관해 많이 아는 만큼 놓치는 부분 없이 법안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담당하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면 결코 훌륭한 검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죠. 제 보고서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배우는 자세로 일하고 있어요. 주기적으로 담당 위원회가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도 해야 하죠.”
 
흔들리지 않는 기둥처럼
공무원이 안정적 직업의 대명사가 된 사회에서 그는 진정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또한 그는 투철한 소명 의식을 가진 선배들로부터 큰 배움을 얻는다고 한다. “입법조사관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검토 보고서의 깊이가 크게 차이 나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경할 만한 입법조사관이 많죠.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

먼 길을 돌아 진로를 찾은 그는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성향과 흥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 선택한 길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진로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를 만나 보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어려움이나 보람을 알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분야의 경험자를 만나보면 그 직업의 내면을 미리 경험할 수 있죠.”

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혼자서 공부하기보다는 다른 고시생들과 함께 공부할 것을 추천했다. 자신의 슬럼프 극복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경쟁자와의 공부는 끊임없는 자극이 되고 때로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고시 준비를 하다 보면 반드시 합격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전혀 다른 길을 걷다가 남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저도 해냈는데 저보다 더 젊고 열심히 준비하는 후배들이 못해낼 리 없죠.”

<Q&A>

Q. 입법조사관은 모든 법안을 검토해야 하니까 업무량이 매우 많을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A. 시기에 따라 달라요. 국회가 열리는 2월, 4월, 6월과 9월부터 12월까지는 많이 바빠요. 2, 4, 6월에는 주로 법안 검토를 하고 9~12월에는 다음해 예산안을 검토해야 하죠. 그럴 때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회의하기도 하고 회의가 끝난 후에는 다음날 진행할 회의 내용을 준비해야 해요. 그 기간이 지나면 여유가 생기죠.
 
Q. 국회의 근무 분위기는 어떤가요?
A. 업무는 확실히 해야 하지만 일하는 분위기는 즐거워요. 일반 회사처럼 선후배 관계도 좋고 동기들과 재밌게 놀기도 하고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아무래도 복장 같은 경우는 격식 있는 편이죠. 특히 회의 때는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어요.
 
Q. 고시 공부에 도전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요. 무턱대고 뛰어들기에는 감수할 게 많아 두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1차 시험 문제를 먼저 많이 풀어보세요. 혼자 먼저 시험지를 풀어보고 합격권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해보는 거죠. 중요한 건 2차 시험인데 1차 시험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그만큼 뒤처지는 거예요. 먼저 1차 시험 기출 문제를 구해 풀어보고 충분히 해볼 만한 점수대가 나오면 고시에 진입하는 게 좋아요. 합격권에서 너무 떨어진 채로 시작하면 점수를 끌어올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Q. 고시 준비를 시작하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해요.
A. 1차 시험부터 3차 시험까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2차 시험이에요. 그런데 1차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2차 시험일까지 노는 고시생들이 있어요. 계속 고시에 도전할 거라면 1차 시험에 떨어진 후에도 2차 시험을 보는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해야 해요. 고시는 단기간에 해치워야 하는데 중간에 쉬어버리면 그만큼 다음 시험에서 남보다 뒤처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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