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프런티어] 최우람 "나에겐 테크놀로지가 물감이죠"
◆ 문화영토 넓히는 뉴 프런티어 ⑨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
2003년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외국에서 전시라곤 해본 적이 없던 '초짜' 조각가 최우람(41)은 처음으로 작품 두 점을 갖고 비행기에 오른다.
개막 전날 부스에서 밤 늦게까지 작품을 설치하던 그에게 바닥을 닦던 한 청소부 아주머니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굿(good)'이라는 사인을 보낸다. 그제서야 온몸을 휘감고 있던 불안과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날 감격해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죠.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좋다고." 감격은 그 이튿날에도, 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움직이는 기계에 예술적 감성을 입히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ㆍ움직이는 미술)' 작가 최우람. 그는 요즘 외국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8년 전 무모한 것처럼 보였던 그의 도전이 무럭무럭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28시간째 눈도 붙이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뉴욕 개인전 준비 때문이다. 그는 미국 내 대표적인 아시아 작가 무대인 '아시아소사이어티뮤지엄'에서 다음달 초 개인전을 연다.
"거대한 신작 한 점을 전시장에 설치할 계획이에요. 신작을 내는 자리는 늘 긴장됩니다.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요."
그가 처음으로'올인'했던 외국 무대는 2006년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그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8000만원을 꿨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모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로서 욕심이 났다. 일본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53층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은 아시아와 서구 미술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전시장이다.
결과는 '대성공'. 이 전시를 계기로 그는 세계무대를 휘저을 초석을 마련했으며 국내에도 번듯한 작업실을 마련했다. "대학 졸업(중앙대 조소과) 후 로봇회사에 취직해 사무실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로봇 등을 만들었죠. 2~3년 뒤에는 월세로 근근이 지하작업실을 빌려 생활했어요. 월세를 내지 못하면 그만두자는 심정으로요."
연희동 3층짜리 작업실은 철물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각종 공구와 기계류로 가득했다. 금속을 자르고 연결하고 도금하는 것이 모두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은 고대에 존재했을 법한 새나 조가비, 가로등에 기생하는 벌레나 곤충을 연상시키는 생명체를 소재로 한다. 작품 이름은 그가 새로 지어낸 학명들로, 이를테면 '어바누스' '울티마 머드폭스'식이다.
이 작품들은 움직일뿐더러 불빛을 뿜어내고 있어 흡사 숨을 내쉬고 있는 생명체 같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처럼 뚝딱뚝딱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로보캅이나 아톰, 태권브이가 한창 인기였을 때 어린 시절을 보냈죠. 제게 기계나 테크놀로지는 물감이고 돌입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도구인 셈이죠."
그는 뼛속까지 토종파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두산레지던시 프로그램' 덕으로 6개월간 체류했지만 되레 외국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계기가 됐다.
"제 작업 특성상 공구와 금속이 필요한데 뉴욕은 너무 느려요. 청계천에서는 하루면 될 일을 뉴욕에서는 재료를 받을 수 있는지 답변을 받는 데만 한 달이 걸리더군요."
서울 예찬론자인 그는 외국 활동이 부럽지는 않다. 외국 유명 미술관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그를 찾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덧 '한국에서 꼭 만나야 할 작가'가 됐다.
"제 작품의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죠. 작품이 움직이고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니까. 무엇보다 제 작품을 보면 한국 사람이 만든 건지, 외국 사람이 만든 건지 가늠하기 어려워요. 지구인이라면 으레 느끼는 감성으로 접근하니까."
[이향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