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용성'식 대학개혁 논란이 되고 있나?
2010-02-04 10:15 CBS사회부 구용회 기자
중앙대 학과통폐합…'상아탑' vs '인력양성소' 대학 본질 고찰해야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의 한때 별명은 '재계의 쓴소리'라고 불렸다. 그렇지만 두산 그룹 비자금 비리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선고를 받았다. 지금 박용성 회장은 중앙대학교 이사장이다.
작년부터 중앙대가 대학개혁을 놓고 내분에 휩싸여 있다. 중앙대의 대학개혁은 사회적으로도 대학이 '상아탑'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력 양성소'가 돼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논쟁을 낳고 있다. 왜 '박용성식' 중앙대 개혁이 논란이 되는 지 그 속사정을 살펴본다.
▶ 박용성식 중앙대 개혁이 왜 논란이 되고 있는가?
=중앙대학교는 두산그룹이 재단을 인수하면서 대학을 ‘실용학문위주’로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5대 계열 40개 학과로 통폐합하겠다는 것이 핵심골자다.
테마가 있는 뉴스[Why뉴스] 안성용 포인트 뉴스美교통장관 "도요타 리콜차량 운전하지 말아야"중극장으로…이유있는 뮤지컬 앙코르차이코프스키 내면이 발레가 되다박범훈 중앙대총장은 경영컨설팅에서 학과 등수를 매겨 '키워야 할 학과'와 '조조정이 필요한 학과' 그리고 '없애야 할 학과'를 판별한 결과, 40개 학과로 줄이는 방안이 나왔다고 말했다. 판정 기준은 사회진출도와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부교수와 학생들은 박범훈 총장이 박용성 이사장 대신 총대를 메고 대학을 기업 다루듯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서 학문단위 재조정에 대한 민주적 소통구조가 파괴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 학교측의 구조조정 명분과 이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박범훈 총장은 이번 구조개혁을 통해 중앙대를 세계적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공부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예를들면, 현재 사범대에서 학과별로 겨우 1-2명이 교사로 임용되고, 한명도 임용이 안되는 학과가 있는데 이런 학과를 계속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유망학과 위주로 학문구조를 완전히 변화시키겠다 것이 이번 개혁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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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총장은 또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곧바로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 1학년과정에 ‘기초 회계’를 교양과목 필수로 지정해 모든 학생이 실용성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설명을 했다.
▶ 회계과목을 인문대든 자연대든 의대든 모든 학생이 이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내에서는 회계과목 필수지정을 두고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문과대학장이 "왜 문과대생이 ‘회계’를 배워야 하는가?"라고 반대의사를 표시했는데, 박총장은 문과대생도 결국 졸업 후 기업으로 진출하지 않느냐? 라면서서 설득을 했다고 한다. -기초회계 과목 전교생 수강은 기업에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 기초적인 회계지식도 없이 들어온다는 박용성 이사장의 지적에 따라 신설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 중앙대가 취업을 ‘대학의 제 1목표’로 설정했는데, 당연히 학문의 다양성이 중요하냐 등의 문제를 놓고 논란이 제기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반대측에서는 학교측이 세계적 명문대로 가겠다고 했지만, 학문단위 재조정을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직업학교’로 가는 것이지 명문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경영컨설팅을 통해 '없애야 할 학과'와 '키워야 할 학과'를 선정할 때 취업률이 가장 큰 선정 기준이 됐다고 한다.
김누리 교수(독문학과)는 "대학구조조정에서 시장의 요구가 ‘절대선(善)’이 되고 있다"며 "취업률만 높으면 명문대가 되는가?" 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동시에 "대학윤리와 책임성, 창조성을 갖춘 인재는 취업용 교육으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일례로 지금 대학에는 ‘조교가 부지런한 학교가 취업률이 높다’는 비아냥이 있다고 한다. 대학의 취업률 조사결과라는게 조교가 취업여부를 학생들을 상대로 대충 조사해서 올리기 때문에 취업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비꼬아 나온 말이라고 한다.
▶ 중앙대 개혁이 대학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나?
=박용성 회장은 중앙대 개혁과 관련, “자신은 기업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대학운영에 도입하자는 것이지 대학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학들이 과거의 시스템을 고집한 채 시장의 요구에 계속 귀를 닫는다면 점점 우물안 개구리로 고립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중앙대 재단이사회는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임기가 적히지 않은 임명장을 줬다고 한다. 문제가 없으면 계속 가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대학을 ‘주식회사 유니버시티’로 장악해가는 일은 우리사회에서 이제 흔한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데 자본권력이 대학을 장악하는 것을 미국내에서 ‘문화전쟁(cultural war)’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취업을 제1목표로 실용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인지 아니면, 학문의 다양성 존중이 우선돼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을 인수한 기업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