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어이없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내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본다.
지난 20년간 부동산 업자가 중앙대학교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린 후, 두산이라는 조타수가 중앙호의 키를 잡아 내심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고 굳게 기대한다.
그러나 모든 학문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정치학을 다루는 정치외교학과가 폐과 운운된다는 사실 자체가 동문으로서 황당하기만 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대내외적으로 강도 높은 발전방안을 구축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흐름에 모교도 선도적인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발걸음은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교훈을 통해서 볼 때, 우리나라 정치, 교육, 언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치외교학과가 도마 위에 올라 죽을 운명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넘어서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역사를 모르는 자가 어찌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모교가 '대학'으로서의 위치를 버리고 대규모의 단과대학 수준으로 전락하기를 원한다면 그리하라.
어느 분이 총장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논의를 운위하고 있다는 자체가 그의 학문적 깊이를 의심케 한다. 한국에 있는,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수한 대학교에 과연 정치학과가 없는 대학이 있던가?
'돋움 발을 하는 자는 오래 서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크게 벌리는 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企者不立, 跨者不行)라는 노자의 말도 모르는가? 정외과 폐과 운운은 단지 '돋움 발을 하려는 것'이고 '가랑이를 크게 벌리는 것'일 뿐 대학발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근시안의 표본이다. 대학운영자의 반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모교 정외과 교수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대학과 학과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우수학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노심초사해 본 일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학문적으로 과연 어느 위치에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본 일이 있는가. 깊이 있는 반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학과의 명칭도 정치학과로 환원하는데 노력해 주실 것을 제의한다.
만약 우리 정외과 동문의 뿌리가, 그리고 나의 뿌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대학운영자들은 직시하기 바란다. 나는 정외과 폐과 운운 논의가 다만 농담이기를 바란다.
2010년 1월 29일
모교를 사랑하는 1978년 정치외교학과 졸업생 전세영 씀.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현재 중국 항주에서 연구안식년을 보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