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명·서울대 명예교수
서울의 한 유수한 대학이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여 톱기사로 났다. 구조를 조정하든 기구를 개편하든 그 조직의 사정에 따른 것이겠으나, 나는 평생을 대학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라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신문에 새로 조정된 도표가 나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내가 평생 전공하고 가르치던 정치학의 정치학과(혹은 정치외교학과)는 눈을 비비고 봐도 없었다. 뭐가 있기는 한데, 그것은 '행정·정책' 그런 것이었고, 정치학은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에 '대학 학과 통폐합'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1950년대에 정치학과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우상의 학과였다"고 한 원로 언론인의 말을 인용하고는, "광복 후 새 나라를 세울 인재가 필요할 때 대학의 정치학과는 인재 산실이었다"고 했다. 그런 정치학과가 그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날아간 모양이다. 이제는 인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요새 우리의 여의도 정치가 하도 엉망이라 그것이 정치학과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결과인가?
정치와 정치학은 다른 것이다. 정치학은 정치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잘못 가르쳐서 우리의 정치가 개판이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보다 나은 정치의 기틀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학 공부의 본연인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래서 시대의 요구가 변하면 무언지 변한다. 그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변해도 되고, 변해서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다. 정치학은 모든 학문의 대종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학문은 정치학과 물리학으로 대표되었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로서 '영국의 헌법'이란 책으로 일세를 풍미한 월터 배조트도 '물리학과 정치학'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또 공자나 맹자를 예로 들 것도 없다. '논어'나 '맹자'도 다 정치학 교과서이다. 수신제가를 한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면 좋은 사회가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조상들이 왜 '사서삼경'을 읽고 또 읽었겠는가?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치학의 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기술의 시대인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자들만 모여서 그 조직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자들과 함께 갈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학과에서 배출하는 인재는 바로 그러한 지도자인 것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했다. 한둘의 기술에 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창조적 리더십의 인재를 만드는 곳이 정치학과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문사철(文史哲)의 본산이 정치학이다. 세월이 흐르면 요즘의 사회과학대학이 정치학대학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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