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경제 19) 동문, 정치재개 충분조건 무르 익었나

최재영 | 조회 수 1363 | 2009.07.05. 08:11


[정치]“친박·친이 뛰어넘어 정부 도와야”

2009 07/07   위클리경향 832호

연구실서 만난 이재오 전 의원, 정치재개 충분조건 무르 익었나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침통한 표정으로 국회본회의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상훈 기자>

중앙대 교수연구실 주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는 ‘國際大學院 敎授 李在伍’ 라고 적혀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한자 이름은 李在五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의 한자가 다르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측근들 정치적 역할 주문
이 전 최고위원의 원래 이름은 ‘李在伍’였다고 한다. 동사무소 직원이 호적을 만들 때 ‘뭐 그렇게 어려운 한자를 쓰냐’며 ‘李在五’로 등기했고 그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본래 이름으로 명패를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박 총장이 본래 이름을 다시 찾아줬다. 나의 이미지에도 ‘伍’가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伍’의 훈은 ‘다섯 사람’이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미지란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고 추구하는 존재다. 이 전 최고위원은 ‘대중 속 이재오’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년여 동안 이 전 최고위원은 대중 밖에 있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5월 26일 “세계의 눈으로 (한국을) 보고 돌아오겠다”며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1년 만에 귀국한 그는 “(당을) 침묵으로 돕겠다”며 정치 현안에 대해 입을 닫았다.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강단에 선 그는 “(나에게) 교수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며 짐짓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국의 미래’만 말해왔다. 그가 제시하는 한국의 미래는 곧 ‘이재오 식 한국의 비전’이다. 미국 대륙과 중국 대륙 횡단여행에서 얻은 체험적 비전이다. 세계화된 이재오의 눈으로 본 한국의 정치 현실은 답답함 그 자체다. 그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너무 답답하다”면서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의 눈은 한국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한국의 대내적 미래 비전으로 ‘공동체 자유주의’를, 대외적 미래 비전으로 ‘코리아 경제문화공동체’를 제시했다. 한국은 자원·인구·군사력 등 소위 ‘하드 파워’로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할 수 없느니만큼 ‘소프트 파워’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 TASR(동남아횡단철도)의 주요 거점도시에 대한 한국의 문화수출을 주창했던 그는 6월 24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선 ‘도시수출’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한국 기술과 문화를 집중적으로 후진개발국가의 도시에 투자함으로써 한국과 후진개발국이 공생공영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새로운 화두를 꺼낸 것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여의도 정가 이런저런 말 오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장성광업소 갱도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이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에서 출격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오계의 한 의원은 “정권 창출의 주역이 이 같은 국난의 상황에서 가방이나 메고 다니는 게 바람직한가”라면서 “더 이상 (이 전 최고위원의) 역할을 방치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정치적 역할을 촉구했다. 친박계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50년, 100년 뒤 한국의 미래에 대한 연구가 이 전 의원의 몫이냐”고 반문하면서 “이재오라는 대권 상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 같은데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의 삶과 일치될 때에만 국민의 호응을 받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작위적으로 만든 이미지로는 결국 신뢰를 잃는다는 지적이다.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의 투사적 이미지와 학습적 이미지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지부조화’란 특정 정치인의 중심적 이미지와 상충하는 사실이 드러날 때 지지도가 추락한다는 의미를 가진 정치학 용어다.

당사자인 이 전 의원은 정작 이런 비판에 무관심한 듯하다. 그는 지난 6월 24일 기자와 만나 “나 같은 정치인이 비전을 제시했으면 이제부터는 교수 등 전문가들이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면서 “과거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 한국의 미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의 권유든, 친박계의 비판이든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정치 재개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실 여의도 정가는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 재개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필요조건은 조성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득 의원이 2선후퇴하면서 친이세력 구심력에 공백이 생긴 상태다. 그 결과는 친이세력의 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거기다가 ‘조문정국’ ‘시국선언정국’을 지나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왕의 남자’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고 ‘여권 2인자’의 역할 공간이 넓어지고 있다.

이 전 의원도 간간히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있다. 6·10민주항쟁을 기념해 지역관계자 30여 명과 태백산을, 팬클럽(재오사랑·JOY) 회원 1000여 명과 속리산을 각각 올랐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마지막까지 초지일관으로 한 길을 가겠다”는 등의 말을 했다. 정치 재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는 또 JOY 회원들이 토요일마다 하는 도배봉사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6월 23, 24일 이틀 동안에는 경기 화성군에서 포도봉지싸기 봉사활동을 했다. ‘무악재’를 넘기 위한 준비운동인 셈이다.
JOY(재오사랑)의 한 지역 대표와 찍은 사진 뒤로 이재오(李在伍)라는 명패가 보인다.

정치 재개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그가 정치 재개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월 재·보선 출마, 당대표 선거 출마, 장관 발탁 세 가지다. 이 전 의원의 서울 은평 을 출마는 불확실해졌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상황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네 차례나 연기됐다. ‘공천헌금’에 대한 법리 적용과 관련한 법원 내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6월 11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이한정 창조한국당 의원 사건에 대해 원심 파기 판결을 내렸다. 문 의원의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만일 문 의원이 무죄 판결을 받거나 7월을 넘겨 항소심 판결이 내려진다면 은평 을 10월 재선거는 없다. 그러면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 재개 일정에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두 번째는 당 대표 출마카드다. 전제조건이 조기전당대회 개최다. 전당대회는 당 대표 교체를 의미한다. 당 쇄신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당쇄신파는 국정 운영 기조 전환, 조기전당대회를 쇄신안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 청와대 의중이 중요하다. 청와대는 ‘근원적 처방’을 약속했다. 청와대는 당 대표 교체를 일회성 처방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국세청장과 경찰청장 인선에서 청와대의 의중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물론 청와대 내부에 변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전당대회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전국 당원협의회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력한 국정 운영을 위한 집권당에 원군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인식도 엄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왕의 남자’를 통한 한나라당 관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 “나라고 대표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는 이 전 의원의 발언이 전언 형식으로 흘러나왔다. 모종의 교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뒤따랐다. 또 한 측근은 이 전 최고위원의 장관기용설에 대해 “장관급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당 대표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 것이다.

은평 을 재보선 10월 전망 불투명
물론 조기전대 개최도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친박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쇄신파가 제기한 조기전당대회의 대전제는 당의 화합이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의 전면 부상은 친이·친박의 정면충돌을 부를 소재다. ‘왕의 남자’ ‘여권의 2인자’라는 이름이 그의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제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도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 이 대통령은 힘의 분산을 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이후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 기용설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당의 쇄신책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인 계파 갈등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친이·친박 인사의 동시 입각설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확정된 것도 아니고 친이계 몫이 이 전 최고위원에게 돌아갈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최고위원의 실명과 함께 정무장관(신설)·노동장관 등 구체적인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이재오 ‘말문’ 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6월 24일 중앙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JOY회원 150명과 함께 1박2일로 경기 화성시 송산면에서 포도봉지싸기 농촌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는 “주민들이 ‘고맙다’면서 ‘JOY농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더라”라고 자랑했다. “낮은 곳, 서민 속에서 얻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극히 자제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미래와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국민에 대한 애정은 무한하다”고 말해 정치적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봉사활동도 좋지만 정치인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봉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 한국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말했다. 과거에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이제부터는 한국의 미래와 비전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일할 것이다. 비전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나는 가끔 한강의 낙조를 본다. 대서양의 낙조가 생각난다. 이제 세계 속에서 한국을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쟁자로 부상하는 국가들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정작 정치권은 당파·계파 싸움에 빠져 있다.
“참으로 답답하다. 이제는 여·야와 계파를 초월해야 한다. 친박·친이를 뛰어넘어 일로 정부를 도와야 한다. 큰틀에서 세계의 흐름과 나라의 비전을 봐야 한다. 정부가 하는 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 개혁적이냐를 봐야 한다. 정부도 확실히 국가 미래를 생각해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중국, 인도, 브라질과 같은 우리의 경쟁국들은 이제야 세계의 흐름에 눈을 떴다. 그들은 가진 자원이 많다. 그들을 넘기 위해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국민에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일은 정작 여권의 실세인 이 전 최고위원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 아니냐.
(손사래치며) “내가…. 그런 얘기하면 안 된다. 소위 창업공신이라는 것은…. 무관이 좋으니깐. 마음을 비우고 사니깐 편하다. 그렇지만 국민과 국가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다. 내가 뭘 할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외국에서 정신차리고 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니 참으로 답답하다. 미래의 국가경쟁력만 생각하면 걱정이 눈앞으로 가린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죽창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가. 정부가 국민의 뜻을 모을 수 있는 화두를 던져야 하는데….”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처지에서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참 답답할 뿐이다. 여의도연구소에서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싶다.”

정치인들이 조속한 정치 재개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되도록 만나지 않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전광현 2010.07.11. 13:11
이동문의 필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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