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 ‘의혈목’ 기고 글 전문>
대학언론의 새 길
이태현_중앙대학교 홍보실장
21세기 ‘프랑스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제기한 바 있다. 디지털 장비가 첨단화, 소형화 되고 이동성이 증가하여 만들어진 ’제7의 대륙‘ 인터넷을 누비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만큼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새로운 생활패턴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표현에도 익숙하다.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전파하는 리포터로서의 기능도 블로거들의 주요 역할이 되고 있다. 또한 ‘publicity''''와 ’citizen''''의 합성어인 ‘publizen''''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처럼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소식들이 곧장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이용자들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은 이제 미디어를 통한 뉴스의 생산이 특정 언론사만의 역할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뉴스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반증이다.
범위를 좁혀 대학으로 들어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교내 곳곳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고 학사관련 정보와 교내 주요 소식도 홈페이지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상시 전달되고 있다. 특히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들이 교류되고 주무부처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도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앙대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학내외의 모든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또 자신도 정보를 올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지금 대학에서 정보를 얻는 과정을 보면 대학언론이 가지고 있던 독점적 지위를 잃었다고 봐야 마땅할 상황이다. 그동안 중대신문과 UBS 등 교내 언론이 담당하던 교내 소식은 물론이고 외부의 정보 학술, 문화정보 등도 이미 인터넷이라는 ‘신천지’가 나타난 뒤로는 속보성에 있어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간 단위 발행과 한정된 시간의 방송으로는 많은 수요층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수요자도 기다릴 만큼 충성도가 높지도 않다. 그렇다면 속보성은 물론이고 정보의 양과 품질을 극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과연 지금의 대학언론이 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학언론 스스로 연구해 볼 숙제다.
지금까지 대학언론은 양방향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수요자와 의사소통하기에는 그 주기가 너무 길다. 중간에 다른 미디어를 통해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은 한번 발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방송 역시 음성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설사 잘못된 정보나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한 문제도 이를 해명하거나 재확인해서 반영하기에는 해당 언론사나 수요자 모두에게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더구나 대학 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외부에서 우리 대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기자라는, 어쩔 수 없는 ‘아마추어 언론인’이지만 그 책임이 역시 막중하다.
이제는 발행주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종이매체나 자칫하면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일방의 매체보다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실시간 업데이트와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인터넷 매체로의 전환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수요자와 즉각적인 교감이 가능한 매체를 갖춤으로써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지고 이는 ‘학생’이자 ‘언론인’이라는 이중적 위치로 고민해야 하는 책임감도 충분히 덜 수 있을 것이다. ‘안주하는 것보다 변화하는 것이 리스크가 적다’는 말처럼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그냥 지키는 것’이 언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랬으니,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새 길을 열어보자’라고 하는 것이 대학언론이 가야 할 길이자 대학언론 만이 가진 ’자유‘이자 ’특권‘이다.
덧붙이자면 대학에서의 홍보 역시 인터넷의 발달과 커뮤니티 등에서의 급증하는 다양한 의견들로 보다 새로운 접근방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대학언론이나 대학 홍보나 똑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