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나라의 학문체계와 이에 따른 대학편제가 19세기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학문 간에는 높은 벽이 쌓이고 소통되지 않은 채 학자들은 중복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많은 교수가 제 학문영역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제가 풀리는 줄 착각한다. 서울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3년째 '미래대학 콜로키엄'을 하고 있는 취지도 학문 간의 벽을 헐고 21세기 추이에 맞게 융합학문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래대학 캠퍼스도 그려보고 대학편제도 인지과학·생명과학·우주과학·미학예술과학 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앙대학교도 일찍이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디지털 미술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을 접목시킨 예술영상 작품과 공학영상 예술작품을 제작하며 융합학문을 선도하고 있다.
현실은 그러나 아직 이러한 흐름을 잘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해의 차원에는 기억과 이성과 상상의 세 축이 엄연히 있는데도 대학은 고루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고 문리과대학 체계(Liberal Arts and Sciences)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인문·자연·사회 등을 기초과학이랍시고 학과를 구분하고 학생들에게는 지식의 편린만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로는 미래 학문 변화에 대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지도 못한다.
그런 뜻에서 박용성 이사장의 대학개혁안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9일자 A2·12면). 기업인의 생산성 패러다임으로 현재의 대학을 보면 모순 덩어리인 것이 사실이다. 학과는 쪼개져 있고 등록금만큼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며 교수들 또한 제대로 평가받지 않은 채 아성을 구축하고 자기만족의 연구를 지속한다. 이런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기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복잡계 과학시대가 전개되고 창조사회가 눈앞에 다가오는 21세기에 와서도 제2계몽시대에 맞는 인재를 대학이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사회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대학이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타파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 이사장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대학은 자유인을 기르고 무한한 잠재력이 언젠가 현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할 수 있게 하는 곳이지 기능인을 기르는 곳은 아니다. 자유와 감성과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기를 만들어야 졸업생들이 사회의 어느 곳에 가서 일하더라도 상황 맥락에 맞게 적응하고 변신할 수 있다.
대학개혁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도 대학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자칫 상아탑의 생명이 훼손되지 않을까 저어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박 이사장의 생각이 대학개혁의 기폭제가 되도록 정부도 언론도 한몫을 해야 한다.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