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내역은 ‘베일’…“몸집경쟁 여전” 비판
수도권의 22개 주요 사립대학이 올해 예산을 짜면서 경제 불황 속에서도 20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항목은 그동안 ‘사용 내역이 불분명하고, 대학간 몸집 경쟁을 부추겨 등록금을 인상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11일 <한겨레>가 재학생이 1만명이 넘는 수도권 대학 22곳이 누리집에 공개한 ‘2009학년도 교비회계 예산서’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이들 대학이 올해 쌓겠다는 적립금은 모두 2288억여원에 이르렀다. 대학의 적립금은 연구·건축·장학·퇴직 등 특정 사업에 사용할 명목으로 미리 떼어놓는 돈으로, 이제껏 실제 세부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
22개 대학 가운데 100억원 이상의 적립금을 책정한 곳은 7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연세대는 912억8980만원을 적립금 예산으로 잡아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연세대 전체 예산 7436억원의 12.3%에 해당하고, 학생들이 낼 등록금 총액 3415억원의 26.7%에 해당하는 규모다. 연세대의 경우, 지난해(686억6481만원)와 견줘도 32.9%가 늘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재무부 관계자는 “학교 동문 등이 낸 기부금이 늘면서 적립금 규모도 커졌다”며 “적립금의 조성 및 사용은 학생들의 등록금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적립금 규모는 경희대(265억원)·고려대(224억)·이화여대(216억원)가 200억원대로 뒤를 이었고, 그 다음은 성균관대(158억)·중앙대(110억)·숙명여대(101억원)차례였다. 조사 대상 대학 전체의 올해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1.0%(21억7719만원) 늘었다.
이들 대학 대부분이 “경제 불황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해 올해 등록금을 동결한다”고 밝혔지만, 당장 시급하지 않은 적립금 예산액은 지난해보다 늘어난 셈이다.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 전체 사립대학이 투자도 하지 않고 쌓아둔 적립금 총액이 2008년 현재 5조4000억원에 이른다”며 “불필요한 몸집 경쟁을 자제하는 대신 교육 여건 개선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산안 가운데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거나 돈이 남았을 때, 다음해로 넘기는 돈인 ‘미사용 차기 이월자금’을 미리 책정해두는 경우까지 있었다. 단국대가 181억원을 책정한 것을 비롯해 아주대가 92억원, 한양대가 59억원을 차기 이월금으로 편성했다. 단국대 쪽은 “예전에 학교에서 외부에 빌려줬던 돈을 올해 받지 못하면 내년이라도 받겠다는 생각에 ‘내년 수입’으로 잡아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이경미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