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들여 약품·장비 구입, 3박4일 고산지대 강행군
"환자 많은데 약품 부족… 보람보단 아쉬움이 남아"
이대혁기자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200여㎞ 떨어진 카메룬 하이랜드. 일교차가 심한 고산지역 기후 등으로 인해 주민들이 각종 질병을 앓고 있지만, 평생 진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이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중앙대병원 김광준(48ㆍ산부인과) 교수는 지난해 가을 해외선교 활동에 나선 지인에게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김 교수는 반색을 했다. 지난해 초 해외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3년간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를 했던 그는 마침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 의료봉사는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었다.
김 교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윤신원(44ㆍ소아청소년과), 차성재(45ㆍ외과)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겨울방학인 2월에 같이 휴가를 내기로 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항공편, 현지 통역 및 교통편을 알아보고 필요한 약품과 장비를 준비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여비와 의약품 구입비는 1인당 200만원 넘게 수렴해 충당했다.
이렇게 해서 꾸려진 '중앙대병원 해외 의료봉사단'은 지난달 18일, 3박4일의 장도에 올랐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첫 밤을 보낸 일행은 이튿날 아침 차로 4시간을 달려 하이랜드의 발 아래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비탈길을 1시간 가량 걸어 올라야 한다.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최대한 줄였지만, 의약품에다 10㎏에 육박하는 초음파 장비까지 이고 지고 오르느라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하이랜드의 환경은 출발 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낮에는 섭씨 30도를 웃돌다 해가 지면 15도까지 떨어지는 심한 기온 변화 탓에 호흡기질환을 앓는 이들이 많았고, 각종 피부질환과 목이 심하게 붓는 갑상샘종 환자도 눈에 띄게 많았다. 김 교수는 "3개 마을을 돌았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나무로 만든 움집이었고, 주민들의 영양 상태도 심각했다"고 전했다.
짧은 일정 탓에 오전에는 이동하고, 오후에는 6시간 이상 환자를 보는 강행군이었다. 윤 교수는 "가는 곳마다 환자가 너무 많이 몰려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한 마을에 100명을 훌쩍 넘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극심한 영양실조로 진료소까지 올 힘도 없어 왕진을 갔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좁은 양철 움막에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미이라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린 거죠. 영양실조 외에 다른 큰 병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원주민들은 이들을 "트리마 카쉬(감사합니다)"로 환영했고, 또 배웅했다. 하지만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윤 교수는 "음식물이 부족해 요오드 결핍으로 생기는 갑상샘종을 앓거나 기생충으로 배앓이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정보 부족으로 약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미안했다"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이들은 마지막 날 쿠알라룸푸르의 한인교회에서 매주 여는 노숙자와 마약중독자 무료진료에도 참여한 뒤 남은 약품과 영양제를 함께 진료한 현지 의사들에게 모두 기증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은 이번 활동을 계기로 정기적인 봉사를 다짐했다. 김 교수는 "곳곳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여름휴가 때는 네팔로 봉사를 떠날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레이시아 오지 의료 활동을 다녀온 중앙대병원 김광준·윤신원·차성재 교수(왼쪽부터)가 3일 한자리에 모여 손을 맞잡고 봉사 의지를 다지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