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사가 추적한 문화재 유랑
정규홍씨 3번째 문화재 수난사 책 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역사, 특히 한국고대사는 마약과도 같다. 한 번 빠져들었다가 나오지 못하고 마니아가 된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화재는 '중독성'이 더 강한 듯하다. 저 문화유산은 왜 이 자리에 있게 됐으며, 이를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이런 궁금증과 고민을 거듭하다가 종국에는 본업을 아예 이 분야로 바꾸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궁금증이 깊은만큼 그런 갈증을 풀어줄 만한 연구가 태부족이기에 그것을 추적하는 이들의 노력은 대체로 철저한 현장성을 무기로 한다.
중앙대 회화과 출신인 서울 노량진 대방중 교사 정규홍(丁圭洪.54)씨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문화유산 수난사에 쏠려있다. 2005년 '우리 문화재 수난사'라는 방대한 한국문화유산 수난사 '호적부'를 작성하더니 2년 뒤에는 그 폭을 더욱 좁혀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라는 단행본을 하나 더 냈다.
그런 지 다시 2년이 흘러 이번에는 '유랑의 문화재'를 들고 나왔다. 부제는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걸었다. 요컨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 우리의 문화유산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정 교사는 앞서 출간된 두 권의 저서를 통해 문화유산의 이동 혹은 변화를 시종일관 '일제에 의한 유린과 약탈'이라는 관점에서 고발하고 이를 통해 일제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촉발하려 한 '목적의식'을 강하게 표출했다.
이번 '유랑의 문화재' 또한 이런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전편들에 견주어 이번 저서는 상당히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 흔적을 곳곳에서 보인다.
다시 말해 전편들이 '일본은 이런 짓을 했으므로 극악무도하다'는 식으로 모든 독자를 저자와 같은 시각으로 끌어들이려 기술했다면 이번에는 '이런 문화유산에는 이런 역사가 담겨있다'는 식으로 문체를 담담하게 바꿨다.
이번 저서에서는 개별 문화유산의 궤적을 추적하기보다는 개항기 이후에 몰아친 도굴 풍조나 골동상의 등장과 같은 시대 풍조와 고고미술품 컬렉터들의 행적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 컬렉터 중에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주목한 것으로 유명한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건설업자 아가와 시게로(阿川重郞)와 같은 일본인 외에도 조선자기 수장가로 유명한 장택상, 치과의사 함석태, 연암집을 간행한 박영철, 오세창 등의 조선인도 포함됐다.
나아가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65호 청자기린유개향로라든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주 사천왕사 소장 녹유조각상, 지금은 한국미술의 마스코트처럼 자리잡은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이 어떤 '유전'을 거쳤는지 등은 흥미를 자아낸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자료들을 당시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일일이 찾아 근거로 들었다는 점이다.
학연문화사 펴냄. 438쪽. 2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