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AIST(카이스트)에 입학한 이한웅(20)군은 ‘서남표 세대’다. 서남표(72) 총장의 취임(2006년 7월) 이후 KAIST가 겪은 변화를 고스란히 경험했다. 100% 영어 전공 강좌에, 학점이 일정 수준(3.0)을 넘지 못하면 ‘공짜 등록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이군은 전공뿐 아니라 중국어나 컴퓨터 실습 과목까지 영어로 듣는다.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이군의 선배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서 총장은 부임 직후 “07학번부터 전공의 100%를 영어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학생과 교수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학생들은 “물리만 잘하면 되지 무슨 영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교수들도 “연구 시간이 줄어든다”며 영어 강좌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서 총장은 한마디로 되물었다. “Is it good for KAIST?(그것이 카이스트를 위해 좋은 일인가?)”
서 총장은 그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태울관 미래홀에서 간담회를 열어 학생들을 설득했다. 교수들을 다독이기 위해 수시로 관저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서 총장은 2007년부터 외국인 교수·해외 파견 학생·영어 강좌 수를 파격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교수들에겐 “외국인 학생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영어로 수업하고 외국인 교수 단 한 명만 있어도 영어로 회의하라”고 주문했다. 교수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은 물론 보고서까지 영어로 작성하게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캠퍼스에서 영어 강좌에 대한 불만이 들리지 않았다. “수업 준비를 따로 하지 않으면 영어 강좌를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강의의 질이 높아지고 결국 학생들의 만족도는 올라갈 것”이란 서 총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교수 연구 부문에서도 ‘서남표식 개혁’의 성과가 드러났다. 서 총장은 테뉴어(정년보장) 심사에서 40%의 교수를 탈락시키며 교수 사회의 ‘철밥통’을 깼다. 교수들 사이에 경쟁의 바람이 불면서 교수 연구 부문에서만 지난해 72점(110점 만점 기준)이던 점수가 89점으로 높아졌다. 교수 연구 부문 강자인 POSTECH(105점)과의 격차는 그만큼 좁혀졌다.
2008년 대학평가에선 지난 한 해 국내 대학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의대가 있는 종합대 가운데는 서울대학교(이장무 총장)가 1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평판도·사회진출 부문에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교수 연구 부문에선 전체 3위(의대가 있는 종합대 중 1위), 교육 여건 분야에선 4위(의대가 있는 종합대 중 2위)였다.
의대가 없는 종합대 중에선 서강대가 1위였다. 의대가 있는 종합대는 교육 여건과 재정·국제화·평판도 등의 지표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이들 대학을 제외하고 분석한 결과다. 서강대는 교수 연구 부문에서 전체 7위(의대가 없는 종합대 중 1위), 평판도·사회진출 부문에서 전체 8위(의대가 없는 종합대 중 1위)의 성과를 냈다.
특히 올해 대학평가에선 지난해 공동 4위였던 고려대와 연세대의 맞수 경쟁에서 연세대(198점)가 고려대를 2점 차로 앞섰다. 지난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경희대도 2년 만에 10위 자리를 되찾았다. 국제화(6위)와 평판도·사회진출(10위)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종합순위 상승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