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역사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

 

국민일보

입력 2017-11-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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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걸린다. 저명한 대가의 책이름을 앞세워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올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역사, 즉 과거 돌아보기라는 점에서 이 물음을 거론하게 됐다. 게다가 ‘∼ 몇 십 주년’처럼 똑 부러지는 시점에 대해서는 세간의 관심이 각별히 커지는 경향도 있지 않은가.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 등에 해당되니 그야말로 역사적인 해다. 뿐만 아니라 올 5월 출범한 문재인정부 또한 연일 과거 문제를 쏟아내고 있다. 국정농단사건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재판이 이어지고 있고, 그와 관련된 잘못된 과거의 정책들이 연일 도마에 오른다.

쇄신 차원에서 과거사가 계속 들춰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이른바 적폐청산이다. 그런데 구 여권은 이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과거사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으로 각각 해석하는 것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1961)’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카를 거론하면 흔히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떠올릴 터다. 하지만 그의 책에서 강조한 것은 주로 역사의 주관성과 관련된 문제다. 근대역사학은 팩트, 즉 객관성만으로 역사를 기술하려고 했지만, 카는 아무리 객관성을 앞세운다고 해도 역사는 기록자의 시각과 경험에 의한 주관이 개입돼 있다고 봤다.

적폐청산이니, 정치보복이니 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 발언이다. 그들은 각각 그렇게 보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각각의 입장이 다 용납될 수는 없다. 여기에는 별도의 잣대가 필요하다. 바로 시대정신이 요청하는 물음이다. 예컨대 그것은 지난 1년 전부터 광장에서 시작된 물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싶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거론할 때 동반되는 명제는 매우 다양하리라고 본다. 한국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겪었던 ‘국정농단-대통령 파면-새정부 출범’ 등으로 이어진 역사에서는 ‘민주’ ‘민주주의’ ‘시민’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당연히 동반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따져 묻는 것과 같다.

다시 물음은 이어진다. 대체 왜 ‘역사란 무엇인가’인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로 가기 위한 전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과거를 돌아볼 이유가 없다. 과거가 아픔이고 그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역사는 그렇듯 희망으로 귀결된다. 역사란 무엇인가란, 결국 겸손한 과거해석과 더불어 희망적인 미래지향을 논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에 온전히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시대정신인 것은 분명하나 그 구현이 지나치게 과거에 쏠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반년 동안 새정부는 적폐청산으로부터 ‘탈피(from)’에만 열심인 듯했다. 반면 ‘어디로(to)’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레토릭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종교개혁 500주년’이란 말도 지난 한 해 동안 무수히 쏟아졌다. 역사란 무엇인가란 차원에서 보면 종교개혁 500주년은 결국 ‘교회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지난 1년 동안 쏟아진 광장의 목소리로 빗대자면 ‘이게 교회냐’ ‘이게 기독교냐’라는 물음을 동반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터다.

이렇듯 역사란 무엇인가란, 결국 동반되는 물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역사는 주관성을 비켜가기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따져봐야 하는 시대정신을 함께 거론하지 않으면 가치판단의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동반돼야 할 물음을 따지지 않는 역사는 영혼 없는 기념식을 치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역사적인 해로서 2017년을 두 달 남짓 남겨놓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여전히 현재라는 과거에 머물 것인가. 기념식을 치른 것처럼 ‘잔치는 끝났고 행사는 잘 마무리됐다’며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아파하며 희망을 심을 것인가. 역사는 그것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든 처절한 아픔이었든 오늘의 나를 잉태한 것이고 동시에 미래로 이어지는 통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불안하기만 하다.

오늘 문재인정부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란 무엇이어야 하나. 과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희망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을까.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오늘 동반돼야 할 물음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언제까지 잔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조용래(경제78)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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