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증세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일보
입력 2017-07-30 17:30
몇 년 전 둘째가 대학을 마치고 둥지를 떠나면서 나타난 변화는 두 가지였다. 식구가 단출해졌고 13월의 월급인 연말정산 환급액이 없어졌다. 그간 소득공제 항목에서 큰 몫을 차지하던 학비 지출이 사라진 탓이다. 두루 섭섭했다. 연말정산 환급액은 원천징수로 이미 자신이 낸 세금의 일부다. 그런데도 환급을 받으면 마치 거저 생긴 것처럼 다들 좋아한다. 세금은 그렇듯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하물며 증세를 반길 이가 있을까.

요즘 ‘문재인정부 경제정책(J노믹스)’이 본격 가동되자마자 증세론이 바로 등장했다. 다만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만 올리자는 이른바 ‘부자증세’라는 점에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새 정부가 ‘100대 경제과제’를 추진하자면 재원 조달을 위해 증세 대상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증세론 하나로 J노믹스를 평가할 수는 없다. J노믹스는 기존의 수출·대기업 주도 성장 패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낡은 패러다임으론 일자리 부족을 메울 길이 없고 심화되는 양극화를 풀 수도 없다. 어찌됐든 패러다임 전환은 한국경제가 꼭 넘어가야 할 길이다.

J노믹스의 핵심은 일자리 중심 경제와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2010년 국제노동기구(ILO)가 기존 성장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안적 가능성으로 제시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만연된 양극화 상황을 감안해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 경제를 추구하자는 실험적 제안이다.

정부는 새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늘려 ‘가계소득 증가→소비·투자 증가→내수 활성화→일자리 증가→경제 성장’으로 선순환을 이뤄가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린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물론 일부 비판 의견도 있고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자영업자·중소기업 등의 반발이 적지 않다.

그런데 소득 주도 성장은 정반대로 치달을 수도 있다. 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 부담 증가→투자 감소→일자리 감소→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것이다. 따라서 추가 대응이 중요하다.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 투자를 유도하려면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 이는 투자환경 개선과 직결되는 문제다.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명분에는 깊이 공감하나 J노믹스의 완결과 성공을 위해서는 적잖은 대책이 더해져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정책 수용자들인 국민을 설득하고 구체적 실천을 통한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다. 되레 국민들에게 혼돈과 좌절감만 떠안길 터다.

반면교사로 2009년 1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의 사례를 보자. 장기 불황 속 자민당의 무능 탓에 일본 민주당은 그 해 8월 총선에서 압승하고 사회민주당·국민신당 연립정권을 꾸렸다. 9월 출범한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는 높은 지지율을 자랑했다. 이어 12월 내놓은 ‘신성장전략’은 무척 신선했다. 신성장전략은 미래의 희망을 담았다. 기존 공공사업 주도 성장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종언을 선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저탄소형 사회를 추구하는 이른바 ‘그린 이노베이션’(녹색 혁신), 사람을 중시하는 ‘라이프 이노베이션’을 내걸었다. 이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일본의 높은 기술력을 적극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신성장전략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1년도 안 돼 지지율이 20% 밑으로 추락, 2010년 6월 간 나오토 총리를 후임으로 세웠다. 간 총리 또한 2011년 3월 11일 터진 동일본 대지진 수습 미흡으로 지지를 얻지 못하고 그해 8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로 교체됐다. 노다 총리 역시 신성장전략에 걸맞은 국가전략회의 등을 구축하는 등 미래비전을 내세웠으나 한 번 흔들린 리더십은 복원되지 못했다. 결국 2012년 12월 민주당은 3년3개월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돌려주고 만다. 멋진 정책안을 내놓고도 당내 균열과 국민 설득 실패로 추진력을 잃고 좌절하고 말았다.

설득 없는 정책은 실패한다.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책 하나하나에도 신중해야 하지만 J노믹스 전체에 대한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확산해가는 노력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쏟아야 맞다. 미래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공감대 확산은 정치권은 물론 반대파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향해 펼쳐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증세 문제도 편 가르기 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이제 가능성은 열렸고, 필요한 건 설득과 공감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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