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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경제78)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파혼’을 요구하며

“하야 내지 2선 퇴진도 절차만 제대로 다져간다면 혼돈 최소화할 수 있을 것”

입력 2016-11-06 18:43

 

 

결혼생활 그 자체가 고통이라면 이혼은 불가피하다. 일방적인 애정공세는 정신적 폭력이나 학대나 다름없다. 그 상태가 길어지면 결국 양쪽 다 심신이 피폐해질 뿐이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즉 ‘박근혜 게이트’의 장본인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과 4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거푸 사과했다. 두 번째 사과에 민심은 더욱 분노하는 분위기다. 사실 그와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대통령 지지율 5%가 웅변하는 것처럼 이미 파탄지경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과의 관계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면서도 “정부 본연의 기능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정운영에서 후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오불관언이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얘기는 취임 즈음에 나왔다. 중국의 신경보(新京報)는 박 대통령 관련기사 제목을 ‘나라와 결혼한 고아 대통령’으로 뽑았고, 국내 일부 지지자들은 대한민국과 결혼한다는 청첩장까지 만들었다.
 

나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27일자 이 코너에 ‘박근혜 대통령의 결혼을 축하하며’란 제목의 글을 썼다. 안팎의 경제위기, 일촉즉발의 남북관계,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구도 등 신접살림을 위협하는 요인이 산적하지만 ‘국민행복시대’를 강조하는 그의 애정공세는 나름 기대된다고 봤다. 다만 그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나 홀로 스타일’이 불통과 독선으로 비쳐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혼축하 메시지’를 담은 그 칼럼이 얼마나 순진한 분석이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그 불통 스타일의 원인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마당 아닌가. 그럼에도 혼인관계를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거듭될 실패를 다시금 방조하는 것이다. 어떻든 대한민국은 살아남아야 한다.

공교롭게 나는 박 대통령이 첫 번째 사과를 하던 날,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중·일 언론인 세미나에 참석했다. 회의 내내 부끄러운 나라꼴 탓에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 언론계 지인들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의외로 공감하지 못했다. TV 와이드쇼에서 이웃나라의 웃음거리를 조롱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저 그들은 흔히 있는 그렇고 그런 비선실세의 권력남용으로만 보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은 다르다. 한국인들 특유의 정치 감각 탓인지 모르겠다. 우리 대부분은 박근혜 게이트를 나의 문제, 나 자신이 당하고 짓밟힌 문제로 이해한다. 작금의 사태를 나 자신과 일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유별나지만 이런 일체화 감정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쟁취했고,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었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역동성을, 정치현실과 일체화하고 있는 현 실체를 박 대통령이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됐든 파경에 이른 혼인관계는 청산돼야 마땅하다. 그것이 하야든, 2선 퇴진 선언이든 서둘러 진행돼야 한다. 늦어질수록 사회 혼란만 증폭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무작정 하야나 퇴진 요청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혼 이후의 걱정 때문에 파멸적인 결혼생활을 참고 견뎌가야 한다는 말은 용납하기 어렵다. 일단 파혼을 결정하도록 하고 그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 순리다.

파혼, 즉 하야 내지 2선 퇴진도 절차만 제대로 다져간다면 혼돈을 최소화하고 거국중립내각, 국회와 시민사회 중심의 개헌 절차 등을 거쳐 얼마든지 다음 수순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파혼선언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호소와 압박이 더욱 중요해졌다. 기도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이 결혼은 이미 너무나 아프고도 지겹다.

조용래(경제78)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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