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사드 배치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

“선택을 강요 당하기 전에 남북문제 해법 마련에 좀 더 치밀하게 임했어야”

입력 2016-07-17 18:57
국민일보
 

[조용래 칼럼] 사드 배치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 기사의 사진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자동차의 오른쪽 사이드미러에 쓰인 경고다. 운전자의 시야각을 넓히기 위해 쓴 볼록거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 중인 일촉즉발의 위기도 겉보기보다 훨씬 더 가깝게 와 있는지 모른다.
 
경기침체와 테러 불안에 더하여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온통 북새통이다. 반론은 물론,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 군민들의 반발과 함께 뒷북 정부를 탓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넘친다. 사안이 복잡하고 중요할수록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데 우리는 핏발부터 세우기 일쑤다. 늘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정부 탓이 크다. 

사드 배치로 인해 잃는 게 더 많겠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가 사드 배치를 수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저히 뿌리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미국의 요청 탓인가. 아니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조기 배치를 애원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도 있었는가. 

의문의 본질은 한국·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한반도를 종종 ‘버린 돌’(사석·捨石)로 취급했다.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일본에 넘기는 ‘가쓰라·테프트 밀약’(1905년)을 비롯해 극동 방위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애치슨라인’ 선언(50년),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근거가 된 ‘닉슨독트린’(69년) 등.

제국주의 시대의 밀약은 놔두더라도 애치슨라인은 사실상 한국전쟁을 방조했다.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한반도에 전력 배치는 무리. 적당히 뒤로 물러나 (문제가 생길 땐) 화력으로 섬멸하면 된다”(애치슨회고록, 1969)고 호언해 결국 북한의 남침, 오판을 불렀다. 

애치슨라인과 관련한 미국의 의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명백한 것은 당시 미국의 극동방위전략에서 한국은 있으나 마나 한 버린 돌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준 미국은 분명 우리의 은인이지만 그들의 한국 인식에는 석연치 않은 뭔가가 있다. 

이후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전판이 됐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가 맡는다’는 닉슨독트린과 더불어 한국과 상의도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했다. 베트남에서 패한 미국은 경제력 소진을 실감하며 군사행동은 최소화하고 역내의 동맹·대립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려고 했다. 중·일(72년), 미·중(79년) 국교정상화가 잇따라 벌어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닉슨독트린은 한반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박정희정권은 미군 철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을 붙들고 늘어지는 한편 시대적 흐름인 해빙의 물결을 타고 7·4남북공동선언(72년)도 추진했다. 하지만 정권은 안보불안을 빌미로 유신체제를 구축, 군사독재의 길로 내달렸다. 미국의 전략변화가 남북대화의 가능성과 함께 씻을 수 없는 군사독재를 낳은 것이다. 

거듭 거론컨대 박근혜정권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또 미국의 버린 돌로 전락되기 전에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걸까. 버린 돌 한국이 한 번은 전쟁으로 또 한 번은 독재로 만신창이가 됐는데, 이 둘을 막아보겠다는 충정이었을까. 혹 안보불안 이슈를 레임덕 차단 방지용 보검으로 쓰려는 뜻은 없었을까.

내내 좌측 깜빡이를 넣고 있다가 급하게 우회전을 한 것만 보면 뜻밖의 반전이 분명하다. 정말 미국의 외교전략을 몰랐던 걸까. 선택을 강요 당하기 전에 남북문제 해법 마련에 좀 더 치밀하게 임했어야 했다. 선택에 떼밀리게 된 것은 남북의 강경대치 탓이니 말이다. 

북을 욕하기 전에 미국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낮은 역사인식이 가슴을 친다. 사드로 빚어질 문제는 시간을 두고 어렵사리 수습될 수도 있겠지만 얄팍한 역사인식은 어찌 바꿀 것인가. 사드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거늘.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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