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전차' 사용 설명서

입력 2016-07-03 16:27 수정 2016-07-03 17:02

 


“우리 정치인들도 꼭 봐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지 생각해 줬으면”
<혼돈의 브렉시트, 희망의 ‘불의 전차’>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의 운명이 몇몇 사람에게 달렸다고 갈파했다(‘역사의 연구’). 창조적 소수가 제몫을 다하면 역사는 전진하나 자만에 빠지면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만한 소수 탓에 한 나라가 휘청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브렉시트(영국의 EU 이탈) 결정도 그 하나다. 불장난을 벌였던 듯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오만함 탓이 크다. 캐머런 등은 이민자 급증과 격차 심화로 인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반EU 정서를 자극함으로써 돌파하려고 했다.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정작 자신은 EU 이탈을 반대하는 등 정치 도박을 벌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영국의 혼돈은 세계 정치경제 질서에 엄청난 불확실성을 떠안겼다. 각국의 증시는 폭락했고 환율은 급변했다. 각국의 노력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우선 피했지만 혼돈의 망령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듯 세계 곳곳을 떠돈다. 오만한 소수는 정말 다수를 우울하게 한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불의 전차’는 한 사람의 열정과 곧은 심지가 다수를 희망과 감동으로 끌어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두 영국 젊은이 얘기다. 스포일러를 경계하는 수준에서 조금 소개해보자. 

 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 해럴드 에이브라함(Harold Abrahams, 1899~1978)과 400m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델(Eric Henry Liddell, 1902~45)이 영화의 두 축이다. 유대인인 에이브라함은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달리는데, 선교사를 지망하는 리델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린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무게중심은 리델로 옮아간다. 


 100m 유망주였던 리델이 주일에 열리는 100m 예선을 포기하면서 영화적 갈등은 극에 이른다. 국가를 저버릴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져도 그의 의지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대신 400m에 출전해 뜻밖의 금메달을 선사한다. 마지막 스퍼트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달리는 그 특유의 모습에는 기쁨이 넘쳤다. 열정과 의지는 리델의 것이지만 감동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다. 

 음악적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오프닝 사운드트랙은 음악을 맡은 반젤리스의 유명한 곡 ‘타이틀스(Titles)’다. 그리스 출신의 반젤리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공식 테마곡을 맡은 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에 동부 지중해의 고전적 풍미가 배어 있다고들 한다. 바로 단조롭게 이어지는 웅장함이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회중 찬송 ‘예루살렘’도 가슴을 뛰게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시에 찰스 휴버트 패리(Charles Hubert Parry, 1848~1918)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매년 여름 런던에서 펼쳐지는 클래식 음악잔치 ‘BBC 프롬스(BBC Proms)’의 마지막 밤 공연 때마다 연주되는데, 영화는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 ‘∼불의 전차를 내게 주오. 나는 정신의 싸움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소∼’라는 블레이크의 시는 얄팍한 술수를 경계하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리델의 여생이다. 영화는 끝 자막에서 그가 중국선교사로 봉직하다 수용소에서 45년 사망했다고만 기록한다. 이 대목은 52년부터 일본에서 38년 동안 선교사로 지낸 스티븐 멧카프(Stephen Metcalf, 1927∼2014)의 자서전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잇다-선교사가 된 구 일본군 포로의 76년’(2005)에 소개된 ‘에릭 리델과의 만남’이 참고할 만하다. 

 소년 멧카프는 일본군이 운영한 강제수용소에서 리델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에 처음엔 크게 반발했지만 귀국 후 생각을 바꿔 일본을 위한 선교사로 자원한다. 리델의 열정과 의지가 그렇게 그에게 이어졌던 것이다. 여운이 깊다. 

 ‘불의 전차’는 주일성수뿐 아니라 희망을 만들고 이어가자는 주장을 담았다. 크리스천들은 물론이지만 우리 정치인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지를 좀 생각해줬으면 한다.

 

조용래(경제78)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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